로마에서도, 자기 노래에 대한 자부심을 감출 수 없었던 그는 네로제(Neronia)라는 축제가 그들의 귀환 전에 기념되도록 명했다. '그의 천상의 목소리'를 듣기를 애원하게 되자, "원하는 사람은 정원에서 내가 답하겠노라"고 알렸다. 그러나, 근위대의 병사들이 민중의 목소리에 맞장구치자 즉시 요구를 들어줄 것을 진심으로 약속하였다. 그는 즉시 그의 이름이 경연에 참가하는 음악가들 명단에 들어가게 명하고, 단지에 그의 제비를 던저 자기 순서에 하프를 든 프라이토리아 근위대의 장관들과 천부장들 그리고 여러 친구들의 수행을 받으며 나아갔다. 그의 자리에서 통상의 사전연설을 한 후, 집정관급의 인사인 클루비우스 루푸스(Cluvius Rufus)를 통해 "니오베(Niobe)의 이야기"라는 곡을 부르겠다고 알렸다. 이것을 오후 넘겨 오랫동안 계속되게 하고 그가 더 잦은 공연을 하도록 남은 경연들은 다음해로 미루게 했다. 그러나, 너무 길어지자 그 사이에 공공 경연자로 나서고 싶은 것도 억누르지 못했다. 민중을 위해 연 황제주최가 아닌 사설 대무대들에서는데 꺼리낌이 없었고 법무관 한 사람은 이런 봉사로 백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지급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가면을 쓰고 비가를 불렀다. 영웅들과 신들의 가면은 여신들과 여자영웅들의 것과 더불어 그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을 닮게만들어졌다. 나머지로, "시련 중의 카나케(Canace in Labour)", "존속살해자 오레스테스(Orestes the Murderer of his Mother)," "눈먼 오이디푸스(Oedipus Blinded)",  "미친 헤라클레스(Hercules Mad)"를 불렀다. 마지막 비극에서 무대 입구의 젊은 보초병이 대본대로 죄수복에 족쇄를 찬 그를 보고 구하러 달려가기도 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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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배운 교양과정 중 음악과목이 있었고 제위에 오른 후 즉시 당대 최고 명성을 향유하는 하프주자[각주:1] 페르프누스(Terpnus)를 찾았다. 몇일이나 그를 앉혀놓고 식후 밤늦게 까지 노래와 연주를 해 점차 악기에 익숙해졌다. 그의 목소리를 보호 개선을 위해 예술가의 제안한 것은 어느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가슴에 납덩이를 두기도 하고 복부와 창자를 구토와 관장으로 게웠으며 목소리에 나쁜 음식과 과일먹기를 금했다. 시끄럽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지만 약간의 진전에 고무되어 무대에 설 것을 열망하여 이에 대해 친구들 사이에서  "듣지 못한 음악이라면 누구도 감동 못시킨다"는그리스 속담을 반복해 들려주었다. 따라서, 그는 나폴리에서 그의 첫 공개연주회를 갖았다. 극장이 갑작스런 지진 충격을 받아 울렸지만 그는 그가 시작한 악장을 마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여러 번 여러 날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악기를 타고 노래를 불렀다. 목이 거의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물러나기는 싫어서 욕실에서 곧바로 극장으로 가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오케스트라 석에서 식하를 하면 떠들석한 민중의 회의 앞에서 그리스어로[각주:2] 조금만 마시고 그들의 귀가 울릴 정도로 크게 노래 불러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의 찬양하에 부른 노래를 나폴리에 도착한 함대에 소속된 알렉산드리아인들이 매우 좋아하자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더 많은 가수들을 불러들였다. 동시에 기사계급의 청년들과 평민 중 오천명의 젊은이들을 뽑아 자기 공연있을 때마다 따라다니는 봄부스대(bombi), 임브리케스대(imbrices), 테스타이대(testae)[각주:3]의 다양한 박수부대를 만들었다. 여러 파로 나뉘어 가발과 화려한 옷으로 차려입으면서 왼손에 반지를 끼게 했다. 각 부대의 지도자는 4만 세스테리티우스의 봉급을 받았다.

 

 

  1. Citharoedus. 하프연주를 하면서 노래하는 사람이다. [본문으로]
  2. 네아폴리스 오늘날 나폴리는 그리스 식민지였었다. [본문으로]
  3. 각기 "벌(the bees)", "기와(the roof-tiles)," "벽돌(the bricks)"로 각각의 소리에서 따온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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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두번 그는 해외 여행을 하려했다. 한번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였고 한번은 아카이아(Achaia)[각주:1]였다. 전자의 경우 떠나기로 한 당일날 포기해 버렸는데 불길한 징조와 항해의 위험 때문이었다. 베스타 신전에 앉아 사원 둘레를 만들 때, 그가 일어나려는데 옷이 걸려서 눈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볼수가 없었다. 아카이아에 가서는, 이스트무스(Isthmus)를 가르려는 시도를 했고[각주:2] 그래서 자신의 근위병들에게 작업을 맡기는 연설을 했다. 나팔 소리를 신호로 그가 첫 삽을 떠 그의 병사들에게 흙동이를 날라주었다. 카스피해의 산악지대의 통로로의 행군을 준비하며 뒤늦은 이탈리아에서의 신병조집에서 얻은 병력으로 한 신설 군단을 만들었다. 전원 6피트의 키를 가진 이 군단을 그는 알렉산더대왕의 팔랑크스부대(phalanx of Alexander the Great)라고 불렀다. 부분적으로 의외이며 또 매우 칭찬할 만하기도 한 이런 행동들을 나는 그의 그릇된 행동들과 별개로 수집하여 여기에 설명을 해 둔다.

 

 

 

 

  1. 그리스. [본문으로]
  2. 역대 황제들의 야심적 사업이었던 코린트 지협(이스트무스)에 운하를 파는 일이다. (JULIUS Caesar, C. xliv. ; CALIGULA, C. xxi.)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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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국의 국경을 넓히려는 희망은 꿈에라도 품지 않았다. 반대로, 브리타니아에서 군단을 철수시키려는 생각은 있었으나[각주:1] 그의 아버지의 명성을 훼손하려는 것처럼 보일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겨우 폰투스(Pontus) 왕국과 알프스 지역을 속주화한 것이었다. 전자는 폴레몬(Polemon)에 의해 그에게 양도된 것이오, 후자는 코티우스(Cottius)의 죽음에 의해[각주:2] 그렇게 된 것이다.

 

 

 

 

  1. 그의 양아버지이자 전임황제 클라우디우스(Claudius)가 브리타니아 일부를 정복했고, 네로 재위 중에도 그의 장군 파울리누스(Paulinus)는 계속 전쟁을 수행했다. ,철수를 고려했던 것은 브리타니아의 여왕 부디카(Boadicea)가 반란을 일으켜 런던 등을 함락하고 로마병사 7천명을 살해했을 때였을 것이다. (Tacit. Agric. xv. I, xvi. ; and Annal. xiv. 29.) [본문으로]
  2. 이 속주는 로마의 코티우스 알프스 속주(Cottian Alps)로 편입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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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위조를 막기 위해, 끊으로 세번 묶은 구멍을 내 봉한 문서들을 고안했다. 마찬가지로 유언에서 첫 두쪽은 유언자의 이름만 서서 공란 채로 증인으로 서명해야 할 사람에게 보내지게 되고 다른 이를 위해 유언장을 쓰는 누구도 그 자신을 위한 유증을 삽입할 수 없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피후견인인 클리안테스(client)는 자기의 변호자에게 적정한 수수료를 지급하여야 했지만[각주:1] 무료봉사하며 국고로 비용을 지불받는 법관들에게는 아니다. 국고와 세무에 관한 재판의 경우는 포룸(forum)에서의 보통 관리들에게로 이전되었고 판관들은 원로원에 호소해야 했다.[각주:2]

 

 

  1. 204 B.C. 의 킬리키아법(Cincian law)은 수수료를 금했으나 아우구스투스가 17 B.C.에 다시 허용하였다(Dio, 54. 18). 클라우디우스(Claudius)는 수수료를 10,000 세스테리우스로 제한했다(Tac. Ann. 11. 5-6). 원로원이 네로 재위 중에 없앴지만(Tac. Ann. 13. 5), 그는 클라우디우스의 법을 다시 부활시켰다.. [본문으로]
  2. 국고담당관(prefects of the treasury)에게 배정되었다. cf. (Claud, ix. 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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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에서 새로운 양식의 건축물을 고안하여 길가든 떨어져 있든 모든 아파트들과 저택 앞에는 현관을 내도록 하였다. 그 평평한 지붕은 불을 끄기 쉽게 하였으며 그 비용은 자신이 지출하였다. 마찬가지로 그는 도시 성벽을 오스티아(Ostia)까지 확장시켜 그 구시가까지 운하로 바다에 잇게 했다. 많은 가혹한 규제와 새로운 명령들이 그의 시대에 만들어졌다. 사치규제법도 제정되었다. 공공 연회는 스포르툴라이(Sportulae)[각주:1]에 한정했고, 여관에서 조리된 식품을 파는 것은 공과 채소를 빼면 금지되었다. 전에는 모든 진수성찬이 팔렸다. 마찬가지로 새롭고 불경한 미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처벌했다. 전차선수들의 특권인 거리휘젖기놀이를 금햇고 자기자신을 위해서 비슷한 장난삼아 속이고 도둑질할 권리를 만들었다. 경쟁적 극장 판토마임 배우들과 그 당파들이 추방되었다.

 

  1. 원래 돈 등을 담는 작은 바구니. 곡물이나 돈이 뿌려지는 연회를 말하는데 기원은 자신의 피보호인엑 후견인인 귀족이 베풀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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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담당할 때 탄원에 대한 결정을 익일 전에 주지 않았으며 후에 서면으로 주었다. 청취하는 버릇은 한쪽 탄원이 계속되게 하기보다 번갈아가면서 들었다. 그의 보좌관들에게 자문하고자 물러나면 한 번에 전체의사를 공개적으로 묻기 보다  서면으로 제공된 그들의 개별적 의견을 조용히 읽어보았다. 그는 마치 다수의견인 듯 사건에 대한 자신의 기호에 따라 법정에서 판결을 선고했다. 오랫동안, 그는 해방노예들의 아들들을 원로원에 들이지 않았으며 전임자들에게 허가되었던 자들도 모든 공직에서 배제해버렸다. 직위가 없는 여분의 후보군들에게 그는 군단의 지휘권을 주었는데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었다. 집정관직은 보통 6개월간 수여했으며 두 집정관 중 하나가 정월 초하루를 조금 앞두고 죽으면 그 자리를 대신 채우지 않았다. 칸니니우스 레빌리우스(Caninius Rebilus)에게 전에 있었던 일[각주:1]을 싫어했는데, 그는 단 하루만 집정관이었다. 그는 재무관급의 인사와 기사계급의 인사들에 조차 약식개선식[각주:2]을 허락했다. 심지어 전혀 군사업무에 관하지 않은 때에도 그것을 수여했다. 그의 의사가 원로원에 읽히도록 할 때 그 자리에 적합한  재무관들[각주:3] 대신 자주 집정관들을 시켜 읽혔다.

 

 

  1. (Jul. lxxvi. 2,) [본문으로]
  2. ornamenta triumphalia 혹은 ovation 이라는 것으로 개선식이 황실인사에 제한되어 수여된 제정 후에는 장군들에게 약식개선식을 하게 했다. [본문으로]
  3. (Aug. lxv. 2.) 아우구스투스 이래의 황제가 원로원에서 의사를 발표하는 관례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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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통산 네번 집정관직을 수행했다.[각주:1] 처음에는 두달, 세번째와 마지막에는 여섯달, 세번재는 네달간이었다. 두번은 연이은 해에 보유했었지만, 다른 것은 그와는 한 년도를 건너서 두었다.[각주:2]

 

 

 

 

  1. 각각 A.U.C. 808, 810, 811, 813 년(A.D. 55, 57, 58,60)이다. [본문으로]
  2. 네로는 서기 68년에도 집정관이었으나 그것은 보결집정관으로 공식적으로 연대를 대표하는 집정관은 아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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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공한 화려한 볼거리 중에 티리다테스(Tiridates)의 장중한 도시 입성[각주:1]은 언급할 가치가 있다. 아르메니아(Armenia)의 왕인 이 사람을 로마에 후한 선물 약속으로 초청하였다. 그러나, 좋지 못한 날씨 탓에 민중들에 선포식에서 그를 보여줄 길이 막히게 되자 다른 첫 기회를 택했다. 수개 연대 병사들을 완전 무장 시킨 채 포룸(forum)내의 한 사원에서 자신은 로스트라(rostra)의 옥좌 위에 개선식 의상을 입고 군단기와 예비대기 아래서 그를 맞았다. 그를 향애 다가오는 티리다테스가 자기 발밑에 꿇어 업드리는 것을 허용하였으나 곧 재빨리 바른 손으로 그를 일으켜 세워 키스하였다. 이왕의 요구에 항제는 그의 머리에서 터반을 벗기고 왕관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 동안 법무관급의 인사가 탄원자의 말을 라틴어로 바꾸어 선포하였다. 이 의식이 있은 후, 왕은 극장에 갔는데 복종의무를 갱신한 후에 네로는 그의 우측에 앉게 했다. 임페라토르(Imperator)[각주:2]라는 칭호의 보편적 인사로 환영받으며 그의 월계관을 카피톨 신전에 보내며, 네로는 로마 제국을 통틀어 전쟁이 이제 없는 양 두얼굴의 야누스의 사원을 닫았다.[각주:3]

 

 

루브루 박물관의 티리다테스가 로마에 세운 방문 기념상("Trdatrome". Licensed under PD-US via Wikipedia.)

 

  1. A. U. C. 819. 제30장을 보라. 티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로마를 방문한 그에게 네로가 왕관을 씌워주었다. [본문으로]
  2. 개선장군의 의미에서 제정 때 황제의 의미로 바뀜. [본문으로]
  3. 야누스의 문을 닫는 것은 누마왕 이래 전쟁이 그쳤음을 보이는 로마의 관습.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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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제전을 그는 프로스케니움(proscenium)[각주:1]의 위에서 바라보았다. 그가 캄푸스 마르티우스(Campus Martius) 연병장 지구에 한 해 전 지은 목재원형극장[각주:2]에서 시전한 검투시합에서는 결투를 위해 죽일 사형수를 비롯해 누구도 살해되지 않도록 했다. 엄청난 재산과 명성을 지닌 400명의 원로원 의원과 600명의 로마 기사계급일원들을 검투사로 연기하게 했다. 같은 명령으로, 사람들이 맹수와 겨루는 것을 비롯 극장의 다른 여러 일들을 하도록 했다. 공중에게 거대한 물고기를 푼 물 위에서의 모의해전을 제공했다. 또한 어떤 그리스 젊은이들에게 피릭댄스(Pyrrhic dance)[각주:3]를 추게 하여 끝난 후에 로마시민의 자유를 수여하기도 했다. 바로 이 중에 관중들이 믿기로 암소의 목형 속에 감춰진 파시파에(Pasiphae)를 황소 한 마리가 덮쳤다. 이카루스(Icarus)는 하늘로 날으려는 첫 시도에서 황제의 좌석 가까이 있는 무대로 떨어졌으며 피를 튀기게 되었다. 그가 축제를 주재하는 것은 아주 드물었으나 침상에 누워 보기는 했고 처음에는 작은 틈새를 통해 보다가 나중에는 포디움(apertures)[각주:4]에서 보았다. 그는 그리스식을 모방해 음악[각주:5], 격투, 전차의 세 분야의 경합 경기를 5년마다 로마에서 열리도록 제도화한[각주:6] 첫 인물이었다. 그는 이 축제를 네로제(Neronia)라고 불렀다. 목욕탕과 체육관(gymnasium)[각주:7]을 봉헌하고 그는 원로원과 기사 계급에 오일을 보내주었다. 그는 집정관급 인사에 추첨에 의해 판정자으로 지명했고 그는 법무관들과 앉았다. 이 때 그는 원로원 의원들이 있는 오케스트라 쪽으로 가서 라틴어 웅변과 시 경연에 대해 우승관을 받았다. 그에 대해 최고의 재능을 가진 여러 인사들이 경쟁했지만 만장일치로 그에게 양보했다. 최고 경연자에 대한 관과 하프가 마찬가지로 판관들에 의해 그에게 수여되기로 했고 그는 이를 무릎꿇고 받았으며 아우구스투스의 상 앞으로 가져가게 했다. 세프타(Septa)에서 그가 연 체육 경연에서는 소의 호화 희생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처음으로 면도를 했고[각주:8], 이를 고가의 진주장식의 보석함에 두고 유피테르 카피톨리누스(Jupiter Capitolinus)에 봉정하였다. 그는 베스타 성녀들을 초대해 격투기를 보게 했는데, 이는 올림피아에서는 케레스(Ceres)의 여사제들이 그런 것을 보는 특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 "장면 앞 혹은 무대 앞(before the scene)"이란 어원의 말로 무대 바로 앞. [본문으로]
  2. A.U.C. 810 (A.D. 56) [본문으로]
  3. 처음에는 전쟁무였다. [본문으로]
  4. 원형극장의 일부로 오케스트라(orchestra) 근처에 원로원석과 황제석 혹은 주최인석이 배정되는 자리다. [본문으로]
  5. 시와 웅변 포함함. [본문으로]
  6. A. U. C. 813 (A.D. 60) [본문으로]
  7. 네로의 목욕탕은 판테온(Pantheon)의 서편에 있었다. 후에 알렉산더 세베루스 황제가 만든 것과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그 흔적은 없지만 굉장한 규모였을 것이다. 이 로마에서의 첫 그리스식 체육관은 목욕탕에 붙어있었다. [본문으로]
  8. 로마에서 첫 면도는 특별의식으로 보통 20세에 했으나 사람에 따라 조금식 달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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