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담당할 때 탄원에 대한 결정을 익일 전에 주지 않았으며 후에 서면으로 주었다. 청취하는 버릇은 한쪽 탄원이 계속되게 하기보다 번갈아가면서 들었다. 그의 보좌관들에게 자문하고자 물러나면 한 번에 전체의사를 공개적으로 묻기 보다  서면으로 제공된 그들의 개별적 의견을 조용히 읽어보았다. 그는 마치 다수의견인 듯 사건에 대한 자신의 기호에 따라 법정에서 판결을 선고했다. 오랫동안, 그는 해방노예들의 아들들을 원로원에 들이지 않았으며 전임자들에게 허가되었던 자들도 모든 공직에서 배제해버렸다. 직위가 없는 여분의 후보군들에게 그는 군단의 지휘권을 주었는데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었다. 집정관직은 보통 6개월간 수여했으며 두 집정관 중 하나가 정월 초하루를 조금 앞두고 죽으면 그 자리를 대신 채우지 않았다. 칸니니우스 레빌리우스(Caninius Rebilus)에게 전에 있었던 일[각주:1]을 싫어했는데, 그는 단 하루만 집정관이었다. 그는 재무관급의 인사와 기사계급의 인사들에 조차 약식개선식[각주:2]을 허락했다. 심지어 전혀 군사업무에 관하지 않은 때에도 그것을 수여했다. 그의 의사가 원로원에 읽히도록 할 때 그 자리에 적합한  재무관들[각주:3] 대신 자주 집정관들을 시켜 읽혔다.

 

 

  1. (Jul. lxxvi. 2,) [본문으로]
  2. ornamenta triumphalia 혹은 ovation 이라는 것으로 개선식이 황실인사에 제한되어 수여된 제정 후에는 장군들에게 약식개선식을 하게 했다. [본문으로]
  3. (Aug. lxv. 2.) 아우구스투스 이래의 황제가 원로원에서 의사를 발표하는 관례였다. [본문으로]
Posted by DreamersFl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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