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92년의 끝

 

클레안데르의 죽음으로 코모두스의 공포감은 더 커졌다. 그의 신하들에 대한 커가는 두려움과 불신이 수많은 집정관급의 의원들을 숙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의심은 물론 그의 가장 가까운 근위대장과 궁정내부의 인물들에게도 미쳤고 조금의 의심으로 전임자를 죽이고 다시 새로운 인물들로 끊임없이 갈아치우는 일을 했다. 클레안데르 사후에는 두 명의 프라에토레안 장관을 두는 것에도 별로 주의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기반이 굳혀지기 전에 죽이고 새로 세우면 족했다. 그런데 결국 이것이 그를 지척에서 보호하는 프레토리안 장관(근위대장)과 그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까지 관리하는 환관에 까지 이른다면 이것은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그의 변덕과 잔인성에 위협을 느꼈던 것은 이들 뿐 아니라 그의 정부까지 있었다. 기번은 코모두스의 최후까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코모두스는 이제 악덕과 불명예의 정점에 달했다. 알랑거리는 궁정의 갈채 중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제국내의 모든 양식있는 이들의 경멸과 적대를 사고 있다는 것을 속일 수 없었다. 그의 맹렬한 정신은 그러한 적대에 대한 의식에 의해, 각종의 재능에 대한 부러움에 의해, 그런 위험에 대한 불안에 의해, 도살의 습관에 의해 자극받았다. 역사는  그의 고의적인 의심으로 희생된 집정관급의 의원들의 긴 명단을 보존해왔다. 그 의심은 특별한 근심으로 안토니누스 가문과 멀건 상관없이 연결된 불운한 사람들을 찾았는데 그 범죄와 즐거움을 준 장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잔인성은 드디어 그 자신에게도 치명적이었다. 그는 무사히도 로마의 가장 고귀한 이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 그 자신의 집안 살람들에게 두려움을 받게 되자마자 그는 죽게 되었다. 그의 애첩인 마르키아(Marcia), 그의 집사인 에클렉투스(Eclectus), 프라에토리안 장관(Praetorian praefect) 라에투스(Laetus)는 그들의 동료와 전임자들의 운명을 깨닫고 폭군의 미친 변덕이나 혹은 민중의 갑작스런 분노로 부터 올 매 시간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파멸을 막기로 결심했다. 마르키아가 그가 맹수들을 사냥한 후 피로한 후로 그의 애인에게 술 한모금을 줄 기회를 잡았다.  코모두스는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가 독의 효과와 취기로 곤욕을 치를때 직업이 레슬링선수인 한 건장한 젊은이가 그의 침실에 들어와 아무 저항없는 그의 목을 졸라 죽였다. 황제의 죽음에 대한 자그마한 의심이 새어나가기 전에 사체는 비밀스럽게 궁전을 빠져나갔다. 이것이 마르쿠스의 아들의 운명이였고 적대적 폭군을 파멸시키는 것은 너무 쉬웠다.그는 정부의 인위적인 권력으로 13년간 너무나 많은 신민(臣民)들을 억압했으며 그들 각각은 개인적인 힘과 능력에서는 그들의 주인과 동등한 사람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이 바로 192년의 한해를 마감하는 12월 31일이었다고 한다. 디오는 그 다음 새해를 맞이하여 할 일로 코모두스가 두 명의 집정관(consul)들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다고 하고, 헤로디안은 코모두스가 다음 날 죽일 사람들의 살생부를 작성했는데 거기엔 수많은 의원들과 함께  음모에 연루된 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던게 그들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이것이 음모자들에게 이 살해 동기를 더욱 구체화 시켰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과연 우발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곧대로 믿어야하는데는 좀더 신중해야 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코모두스의 죽음과 함께 네르바-안토니누스 조 역시 최후를 맡는다. 코모두스와 그의 통치를 받았던 로마인의 삶은 비참했지만 어쨌든 그가 속했던 왕조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남긴 것도 많았다. 이후로 이 왕조가 남긴 안토니누스란 이름이 왕조가 끝난 후에도 황제들에게 많이 쓰였다. 거의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가 가진 황제로서의 의미는 아니지만 그 만큼 선호된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음모자들은 이 사태를 장악하기 위해 근위대나 민중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밤을 기다려 행동하기 시작했다. 죽은 황제의 시신을 몰래 숨겨서 운반해 파묻었다. 물론 원로원에 알려진 후에도 그는 기록말살형이라는 다른 폭군들이 받았던 불명예를 피할 수는 없었다. 프라에토리안 장관인 라에투스는 행동을 개시했다. 이 사태를 해결하고 적어도 자신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도록 차기 황제를 자신의 손으로 결정해야만 하는 시점에서 그는 생존한 몇 안되는  명망높은 원로중에 페르티낙스(Pertinax)를 찾아간다. 헤로디안은 이 긴박한 순간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날 밤 모두 잠든 틈에, 라에투스(Laetus)와 에클렉투스(Eclectus)는 몇 공모자들과 동행해 페르티낙스(Pertinax)에게 갔다. 그의 집의 잠긴 문앞에 서서, 거길 지키는 문지기를 깨웠다. 그 자가 깨어나 프라에토리안 장관이라고 알고 있는 라에투스와 문앞에 선 병사들을 보자 놀라서 그의 주인에게 가서 보고했다. 페르티낙스는 그의 손님들을 들어오도록 지시하며, 그가 예상하던 운명이 마침내 닥치려 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극한에서도 그는 너무도 침착하게 일어나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그들을 받아들였다. 비록 그는 라에투스가 에클레투스와 함께 그를 죽이러 왔다고 믿었지만 안색의 변화없이 침착하게 이야기 했다.
"오랫동안" 
그가 말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내 인생이 끝을 기다려 왔다. 그리고 코모두스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지명한 조언자 중의 유일한 생존자인 나에 대한 행동이 이렇게 늦은게 뜻밖이다. 당신들은 왜 이를 미루었는가? 당신들은 당신들의 명령을 수행할 것이고 나는 줄어드는 희망과 끊임없는 공포에서 벗어나 겠지."
이에 대해 라에투스는 대답했다.
 "부디 그대와 그대의 과거 행동에 걸맞지 않는 말들을 멈추시오. 우리 방문은 당신의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과 로마의 안전과 관계되오. 그 폭군은 죽었소. 그 자신이 자초한 운명의 희생이오. 그가 우리에게 계획했던 것들을 우리가 그에게 해버렸소. 우리는 당신 손에 나라를 맡기려고 왔소. 당신이 절제된 인생으로 인해 가장 두드러진 의원일 뿐 아니라 당신의 위대함과 일생의 고귀함으로 존경을 받았음을 알고 있소. 이런 모든 이유들이 우리가 하는 일이 민중을 기쁘게 하고 우리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믿게 하고 있소."
페르티낙스는 답했다.
"왜 늙은 사람을 기만하시나? 왜 당신들은 나를 우선 조롱해 두고 나중에 죽일 겁장이로 보는가?"
이에 에크렉투스는 말했다.
"당신이 우리 말을 믿지 않는다면 이 필기판(tablet)을 읽어보시오. 그의 필체를 자주 봤으니 알겠지. 이로부터 당신은 우리가 벗어난 위험을 알고 우리말에 거짓이 없고 진실이 있음을 알게 될 거요."
필기판을 읽고 나서 페르티낙스는 그의 옛 친구의 말을 믿엇다. 이제 모든 일을 알고 그들을 따랐다.

 

심야의 불청객


이렇게 라에투스의 손에 이끌려 프라에토리안 근위대의 병영으로 가서 황제로 추대됐다. 모든 민중들이 폭군의 죽음으로 찾아온 해방의 기쁨으로 훌륭한 인품을 갖춘 황제의 즉위를 반겼다. 기번은 코모두스의 악덕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이 고귀한 아우렐리우스의 동료였던 새 황제의 덕을 보여주는 개혁 조치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는 자유의 달콤함만을 이야기하지도 않았고 파탄난 재정을 충실히해야 할 입장에서 여러 개혁을 추진했다. 경자유전 차원에서의 개혁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근위대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왜 늙은 사람을 기만하시나? 왜 당신들은 나를 우선 조롱해 두고 나중에 죽일 겁장이로 보는가?"라는 페르티낙스의 말은 3달동안 연기되었다가 실현된다. 이때까지 라에투스가 근위대를 지휘했다면 정확하게 맞지만, 그를 즉위시킨 그의 친구는 아마도 갖 임명되어서 근위대의 뜻을 대변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그는 프라에토리안 근위대에게 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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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레디에이터>

 

현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전혀 다른 성향의 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이야기는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통해서 유명해 졌다. 이 영화는 알려지다시피 마르쿠스 황제와 같은 대철학자이자 현군(賢君)이 아들 코모두스가 장래 폭군(暴君)이 될 만한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 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으며 죽기 전에 로마를 다른 사람 즉 장군 막시무스(Maximus)에게 넘겨주려 했다고 의혹에서 시작해서 막시무스에 의한 코모두스의 제거 과정을 다루고 있다. 물론 잘 알려지다시피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있었던 사실들을 짜깁기해서 등장인물들이나 상황들을 설정했다. 완전히 역사적 기록을 외면한 것은 아니지만, 기록에 충실한 부분은 많지 않으며 단지 사실들은 여러가지 짜집기를 통해서 일종의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과 결합했다. 예를 들어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코모두스가 후계자가 누구될지 걱정하고 있는 장면 등이 있어 마르쿠스 황제 사망당시 후계자가 미정이었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코모두스는 황제가 죽기 3년전 부터 이미 공동황제였다. 결국, 영화는 새로운 역사적인 의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판타지"를 즉 있었으면 좋았지만 도저히 있었을리 없는 이야기를 영상화하고 있다. 특히 아마도 코모두스의 즉위 후와 그의 사망 까지 그의 어린 조카의 나이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을 볼 때 이 영화 전체가 마르쿠스 황제의 죽음에서 코모두스 재위의 몇년간을 다룬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서기 182년에 있었던 코모두스의 맏누나이자 황후(전 공동황제였던 죽은 루키우스의 부인)였던 루킬라(Lucila)의 음모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


마르쿠스 황제가 게르만 전선에 나가있을 때 전선을 지휘하는 실질적 지휘관은 막시무스 데키무스 메리디우스(Maximus Decimus Meridius)로 그들에 대한 마지막 공세를 취한다. 여기서도 게르만인들은 머리없는 로마인의 시신을 말에 태워 보내 로마군을 격분시키는 야만스럽고 흉포한 존재로 나온다. 장군 막시무스의 꿈은 이 싸움을 마지막으로 은퇴해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 지으며 살아 것이다. 막시무스에 의해 전투가 승리로 끝난 후에 황제가 애지중지 하는 유일한 혈육들인 코모두스-루킬라 남매가 찾아온다(실제로는 아들은 코모두스가 유일하지만 마르쿠스의 딸들은 꽤 많다). 루킬라의 경우 죽은 전공동황제의 재가하지 않은 과부로 그 사이에 8살 난 아들을 가지고 있다고 영화상 설정되었지만, 실제 루킬라는 코모두스 이후로 살아남았던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코모두스의 능력이나 인격에 대해 비관적인 마르쿠스 황제는 죽음을 예감하고 후계에 관해 막시무스에게 넘겨 로마의 영광을 되찾을 모종의 계획을 실현하려 한다. 코모두스가 이 계획을 듣자 아버지를 살해하게 되고 이를 눈치 챈 장군 막시무스와 그 가족(어린 아들과 아내)들을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여기서 구사일생 살아난 막시무스가 가족을 구하러 고향에 가지만 이미 늦고 그 자신은 노예 검투사(gladiator)가 되어 생존을 위해 동료를 죽여야하는 처지가 된다.그러나 그는 황제가 죽은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대대적인 축제에서 훌륭한 검투 실력을 발휘하여 이 위대한 장군이 검투사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로마의 민중들에게 알린다. 그의 생존 소식에 로마의 민심은 흔들리며 원로원을 무시하는 코모두스의 행동에 대해 반발하는 원로원과 자신과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루킬라와 검투사이지만 아직 군단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막시무스가 힘을 합쳐 음모를 꾸민다. 이 음모는 근위대에 의해 발각되어 사실상 진압되고 관련자는 황제에 의해 구금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코모두스의 헛된 야망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으로 상황이 뒤집히게 된다. 이 부분은 판타지스러운 부분이다. 코모두스가 이렇게 빨리 죽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구금된 막시무스에게 상처를 입힌채 몸소 그와 검투시합을 해서 그를 죽인다는 것이고 후계자로 생각했던 루킬라의 아들 대신 그가 누나 루킬라와 결혼해서 순수한 혈통의 후계자에게 로마를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이전에 루킬라와 막시무스가 옛 연인사이로도 나온다. 오현제시대의 계승 방식을 따르자면 친아들이 아닌 능력을 인정받은 자가 사위가 되어 후계가 되므로 오히려 루킬라의 남편이 황제계승권을 가졌다고 볼 수 있고, 만일 마르쿠스가 막시무스를 후계자로 바꾸었다면 전부인과 이혼하고 루킬라나 임신이 가능한 자신의 딸들 중 한 명과 결혼시켰을 것이다. 이 시합에서 두 사람 모두 죽게 되고 황후 루킬라는 공화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역시 현실성없는 말을 남긴다.

 

실제 역사 속의 코모두스 황제[단독재위 180-192년]와 루킬라의 음모[182년]


그럼 실제 기록들은 어땠을까?

단지 마르쿠스의 죽을 때의 일들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디오의 경우 아버지의 세심한 배려로 훌륭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코모두스"가 이미 천박하고 잔인한 기질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죽기 이틀 전에 그의 동료들을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런 성격에 대한 우려 이상은 아니었고 후계자를 그의 동료 중의 하나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미숙한 황제를 보좌해서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헤로디안(Herodian) 역시 이 때 마르쿠스가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을 불러 모아 그의 아들을 사이에 두고 한 유언을 전하고 있다. 거기서 그는 아들이 그릇된 길로 빠져 로마를 위험에 빠뜨릴 것인가를 걱정했고 이를 막기 위해 그들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을 것을 당부했던 것이다. 한편 디오는 이미 그의 아들에게 절망한 나머지 생전에 자주 아들이 일찍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고도 한다. 문제는 그런 그가 왜 오현제식의 양자 입양이라는 방식을 무시하고 끝까지 아들에게 세습을 고수했는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영화상으로는 루킬라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의 신변에 대한 걱정으로 음모를 꾸몄다고 말하고 있지만 헤로디안은 그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루키우스(Lucius, 전공동황제, 루킬라의 남편)가 죽은 후 루킬라는 그녀의 황실에서 지위(황후)에 따른 특권을 가진 채 아버지에 의해 폼페이아누스(Pompeianus)와 결혼했다. 코모두스 역시 그런 황실의 영예를 가지는 것을 허락했으며 극장에서 황실좌석에 계속 앉았으며 성화(聖火)가 그녀 앞에 놓여졌다. 하지만 코모두스가 크리스피나(Crispina)와 결혼했을 때 관습상 극장의 앞줄은 (새) 황후에게 배당된다. 루킬라는 이것이 견딜수 없었고 황후에게 주어진 영예는 그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남편 폼페이아누스가 코모두스에게 충직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제국 찬탈의 계획에 대해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으며 대신 젊고 부유한 귀족인 쿼드라투스(Quadratus)를 시험하려고 그녀와 함께 동침한다는 소문을 냈다.


이렇게 해 쿼드라투스와 그를 통해 원로원의 몇 인사들을 끌어들인 후에 코모두스를 암살할 계획을 짠다. 젊은 원로원 의원인 퀸티아누스(Quintianus)가 검투장에서 비수로 코모두스를 암살하기로 한다. 그러나 찌르기도 전에 "원로원이 이걸 너한테 보냈다"라는 말을 꺼내 근위대에게 붙잡히고 연루자들은 모두 사형당하게 된다. 이것이 루킬라의 음모의 전모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이후로 코모두스의 성격은 크게 변하고 네로와 도미티아누스같은 폭군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많은 역사가들이 이 사건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본다. 영화에서는 코모두스가 짧은 시간안에 막시무스의 등장에 의해서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로마민중들은 적어도 189년까지 현제의 아들인 코모두스까지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 때도 반란이 일어났지만 민중들은 그의 잘못보다 그를 오도하는 몇몇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집사인 크레안데르(Cleander)를 처형하는 것에 만족했고 그 뒤 3년이나 더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대체적인 영화 내용과 역사기록은 차이가 많지만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비슷한 기록이 많이 있다. 코모두스에게 처형된 막시무스란 이름을 가진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퀸틸리우스 집안의 두 형제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아들에 대한 기막힌 처형명령에 대해서도 디오가 전하고 있다. 단지 살아남아 도망간 경우는 막시무스가 아닌 그의 아들이었다. 루킬라와 코모두스가 연인관계였다는 암시는 그들의 나이차로 보아 가능성이 없고 그들의 최악의 관계에서도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만, 실제로 최후에 코모두스가 사망하게 된 것은 그의 변덕스러운 기질을 두려워한 마르키아(Marcia)라는 코모두스의 첩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10여년 뒤의 일이다. 그리고 <황제 역사(Historia Augusta)>는 코모두스의 방탕하고 문란한 사생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검투시합에 대해 말하자면 코모두스는 물론 대중들에게 여러차례의 검투시합의 볼거리를 제공했고 그 자신이 검투시합을 몸소 즐겼다는 기록이 많으며 그 때문에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이 아닌 검투사와 사통해서 얻은 아들이란 비아냥을 들었다고 한다. 또,  로마의 코모두스가 아버지를 암살했다는 영화의 설정도 가능성이 희박하고, 오히려 이런 시도를 했던 것은 훗날의 카라칼라 황제이다.

대개의 동양사가들과 마찬가지로 서양사가들도 권력자 등 역사상 주요인물들에 대한 인격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고 근대사가인 기번역시 이런 코멘트를 황제에는 어김없이 남기고  중요인물일 때 역시 남긴다.  이런 코모두스의 약점과 학정에도 기번은 코모두스에 대해 주로 디오의 말을 받아들인 듯 한데  이런 평가를 내린다.


코모두스는 이 처럼 사람의 피에 대한 미친듯한 갈증을 타고나 그의 어린 시절로 부터 가장 반인간적인 행동을 할 호랑이는 아니었다. 자연이 그에게 사악하기 보단 유약한 그의 기질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의 단순성과 겁많음이 그를 그의 시종들의 노예로 만들었는데, 그들은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부패시켰다. 그의 잔인성은 처음 다른 사람의 말에 복종했고 습관으로 고착되어 그의 영혼의 지배적인 격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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