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레디에이터>

 

현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전혀 다른 성향의 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이야기는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통해서 유명해 졌다. 이 영화는 알려지다시피 마르쿠스 황제와 같은 대철학자이자 현군(賢君)이 아들 코모두스가 장래 폭군(暴君)이 될 만한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 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으며 죽기 전에 로마를 다른 사람 즉 장군 막시무스(Maximus)에게 넘겨주려 했다고 의혹에서 시작해서 막시무스에 의한 코모두스의 제거 과정을 다루고 있다. 물론 잘 알려지다시피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있었던 사실들을 짜깁기해서 등장인물들이나 상황들을 설정했다. 완전히 역사적 기록을 외면한 것은 아니지만, 기록에 충실한 부분은 많지 않으며 단지 사실들은 여러가지 짜집기를 통해서 일종의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과 결합했다. 예를 들어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코모두스가 후계자가 누구될지 걱정하고 있는 장면 등이 있어 마르쿠스 황제 사망당시 후계자가 미정이었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코모두스는 황제가 죽기 3년전 부터 이미 공동황제였다. 결국, 영화는 새로운 역사적인 의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판타지"를 즉 있었으면 좋았지만 도저히 있었을리 없는 이야기를 영상화하고 있다. 특히 아마도 코모두스의 즉위 후와 그의 사망 까지 그의 어린 조카의 나이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을 볼 때 이 영화 전체가 마르쿠스 황제의 죽음에서 코모두스 재위의 몇년간을 다룬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서기 182년에 있었던 코모두스의 맏누나이자 황후(전 공동황제였던 죽은 루키우스의 부인)였던 루킬라(Lucila)의 음모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


마르쿠스 황제가 게르만 전선에 나가있을 때 전선을 지휘하는 실질적 지휘관은 막시무스 데키무스 메리디우스(Maximus Decimus Meridius)로 그들에 대한 마지막 공세를 취한다. 여기서도 게르만인들은 머리없는 로마인의 시신을 말에 태워 보내 로마군을 격분시키는 야만스럽고 흉포한 존재로 나온다. 장군 막시무스의 꿈은 이 싸움을 마지막으로 은퇴해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 지으며 살아 것이다. 막시무스에 의해 전투가 승리로 끝난 후에 황제가 애지중지 하는 유일한 혈육들인 코모두스-루킬라 남매가 찾아온다(실제로는 아들은 코모두스가 유일하지만 마르쿠스의 딸들은 꽤 많다). 루킬라의 경우 죽은 전공동황제의 재가하지 않은 과부로 그 사이에 8살 난 아들을 가지고 있다고 영화상 설정되었지만, 실제 루킬라는 코모두스 이후로 살아남았던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코모두스의 능력이나 인격에 대해 비관적인 마르쿠스 황제는 죽음을 예감하고 후계에 관해 막시무스에게 넘겨 로마의 영광을 되찾을 모종의 계획을 실현하려 한다. 코모두스가 이 계획을 듣자 아버지를 살해하게 되고 이를 눈치 챈 장군 막시무스와 그 가족(어린 아들과 아내)들을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여기서 구사일생 살아난 막시무스가 가족을 구하러 고향에 가지만 이미 늦고 그 자신은 노예 검투사(gladiator)가 되어 생존을 위해 동료를 죽여야하는 처지가 된다.그러나 그는 황제가 죽은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 대대적인 축제에서 훌륭한 검투 실력을 발휘하여 이 위대한 장군이 검투사로 살아있다는 사실을 로마의 민중들에게 알린다. 그의 생존 소식에 로마의 민심은 흔들리며 원로원을 무시하는 코모두스의 행동에 대해 반발하는 원로원과 자신과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루킬라와 검투사이지만 아직 군단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막시무스가 힘을 합쳐 음모를 꾸민다. 이 음모는 근위대에 의해 발각되어 사실상 진압되고 관련자는 황제에 의해 구금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코모두스의 헛된 야망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으로 상황이 뒤집히게 된다. 이 부분은 판타지스러운 부분이다. 코모두스가 이렇게 빨리 죽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구금된 막시무스에게 상처를 입힌채 몸소 그와 검투시합을 해서 그를 죽인다는 것이고 후계자로 생각했던 루킬라의 아들 대신 그가 누나 루킬라와 결혼해서 순수한 혈통의 후계자에게 로마를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이전에 루킬라와 막시무스가 옛 연인사이로도 나온다. 오현제시대의 계승 방식을 따르자면 친아들이 아닌 능력을 인정받은 자가 사위가 되어 후계가 되므로 오히려 루킬라의 남편이 황제계승권을 가졌다고 볼 수 있고, 만일 마르쿠스가 막시무스를 후계자로 바꾸었다면 전부인과 이혼하고 루킬라나 임신이 가능한 자신의 딸들 중 한 명과 결혼시켰을 것이다. 이 시합에서 두 사람 모두 죽게 되고 황후 루킬라는 공화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역시 현실성없는 말을 남긴다.

 

실제 역사 속의 코모두스 황제[단독재위 180-192년]와 루킬라의 음모[182년]


그럼 실제 기록들은 어땠을까?

단지 마르쿠스의 죽을 때의 일들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디오의 경우 아버지의 세심한 배려로 훌륭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코모두스"가 이미 천박하고 잔인한 기질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죽기 이틀 전에 그의 동료들을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런 성격에 대한 우려 이상은 아니었고 후계자를 그의 동료 중의 하나로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미숙한 황제를 보좌해서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헤로디안(Herodian) 역시 이 때 마르쿠스가 그의 친구들과 친척들을 불러 모아 그의 아들을 사이에 두고 한 유언을 전하고 있다. 거기서 그는 아들이 그릇된 길로 빠져 로마를 위험에 빠뜨릴 것인가를 걱정했고 이를 막기 위해 그들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을 것을 당부했던 것이다. 한편 디오는 이미 그의 아들에게 절망한 나머지 생전에 자주 아들이 일찍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고도 한다. 문제는 그런 그가 왜 오현제식의 양자 입양이라는 방식을 무시하고 끝까지 아들에게 세습을 고수했는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또한 영화상으로는 루킬라가 자신과 자신의 아들의 신변에 대한 걱정으로 음모를 꾸몄다고 말하고 있지만 헤로디안은 그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루키우스(Lucius, 전공동황제, 루킬라의 남편)가 죽은 후 루킬라는 그녀의 황실에서 지위(황후)에 따른 특권을 가진 채 아버지에 의해 폼페이아누스(Pompeianus)와 결혼했다. 코모두스 역시 그런 황실의 영예를 가지는 것을 허락했으며 극장에서 황실좌석에 계속 앉았으며 성화(聖火)가 그녀 앞에 놓여졌다. 하지만 코모두스가 크리스피나(Crispina)와 결혼했을 때 관습상 극장의 앞줄은 (새) 황후에게 배당된다. 루킬라는 이것이 견딜수 없었고 황후에게 주어진 영예는 그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남편 폼페이아누스가 코모두스에게 충직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제국 찬탈의 계획에 대해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으며 대신 젊고 부유한 귀족인 쿼드라투스(Quadratus)를 시험하려고 그녀와 함께 동침한다는 소문을 냈다.


이렇게 해 쿼드라투스와 그를 통해 원로원의 몇 인사들을 끌어들인 후에 코모두스를 암살할 계획을 짠다. 젊은 원로원 의원인 퀸티아누스(Quintianus)가 검투장에서 비수로 코모두스를 암살하기로 한다. 그러나 찌르기도 전에 "원로원이 이걸 너한테 보냈다"라는 말을 꺼내 근위대에게 붙잡히고 연루자들은 모두 사형당하게 된다. 이것이 루킬라의 음모의 전모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이후로 코모두스의 성격은 크게 변하고 네로와 도미티아누스같은 폭군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많은 역사가들이 이 사건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본다. 영화에서는 코모두스가 짧은 시간안에 막시무스의 등장에 의해서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로마민중들은 적어도 189년까지 현제의 아들인 코모두스까지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 때도 반란이 일어났지만 민중들은 그의 잘못보다 그를 오도하는 몇몇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집사인 크레안데르(Cleander)를 처형하는 것에 만족했고 그 뒤 3년이나 더 황제의 자리에 있었다.

대체적인 영화 내용과 역사기록은 차이가 많지만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비슷한 기록이 많이 있다. 코모두스에게 처형된 막시무스란 이름을 가진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퀸틸리우스 집안의 두 형제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그의 아들에 대한 기막힌 처형명령에 대해서도 디오가 전하고 있다. 단지 살아남아 도망간 경우는 막시무스가 아닌 그의 아들이었다. 루킬라와 코모두스가 연인관계였다는 암시는 그들의 나이차로 보아 가능성이 없고 그들의 최악의 관계에서도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만, 실제로 최후에 코모두스가 사망하게 된 것은 그의 변덕스러운 기질을 두려워한 마르키아(Marcia)라는 코모두스의 첩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10여년 뒤의 일이다. 그리고 <황제 역사(Historia Augusta)>는 코모두스의 방탕하고 문란한 사생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검투시합에 대해 말하자면 코모두스는 물론 대중들에게 여러차례의 검투시합의 볼거리를 제공했고 그 자신이 검투시합을 몸소 즐겼다는 기록이 많으며 그 때문에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이 아닌 검투사와 사통해서 얻은 아들이란 비아냥을 들었다고 한다. 또,  로마의 코모두스가 아버지를 암살했다는 영화의 설정도 가능성이 희박하고, 오히려 이런 시도를 했던 것은 훗날의 카라칼라 황제이다.

대개의 동양사가들과 마찬가지로 서양사가들도 권력자 등 역사상 주요인물들에 대한 인격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고 근대사가인 기번역시 이런 코멘트를 황제에는 어김없이 남기고  중요인물일 때 역시 남긴다.  이런 코모두스의 약점과 학정에도 기번은 코모두스에 대해 주로 디오의 말을 받아들인 듯 한데  이런 평가를 내린다.


코모두스는 이 처럼 사람의 피에 대한 미친듯한 갈증을 타고나 그의 어린 시절로 부터 가장 반인간적인 행동을 할 호랑이는 아니었다. 자연이 그에게 사악하기 보단 유약한 그의 기질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의 단순성과 겁많음이 그를 그의 시종들의 노예로 만들었는데, 그들은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부패시켰다. 그의 잔인성은 처음 다른 사람의 말에 복종했고 습관으로 고착되어 그의 영혼의 지배적인 격정이 되었다.

 


 

 

Posted by DreamersFl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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