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또한 로마에 이중의 문을 가진 신전을 세웠는데 그 두 문을 전쟁의 문이라 불렀다. 전시에 사원은 개방되었지만 평화시엔 닫혔던 것이다. 후자의 유지는 어려운 문제로 나라가 확장에 따라 야만적인 나라들과 접경함에 따라 충돌하여 전쟁으로 지새던 시기에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 시절에 안토니우스가 타도되자 닫히게 되었다. 그전에 마르쿠스 아틸루스(Marcus Atilius)와 티투스 만리우스(Titus Manlius)가 집정관인 때 잠깐 닫혔을 뿐이다. 그 후 곧 전쟁이 다시 일어났고 열리게 되었다. 누마왕 당대에는 하루조차 열린 적이 없어 43년 재위간 닫혔을 만큼 비전쟁이 완전한 것이었다.
로마 민중은 이 왕의 의로움과 온유함으로 유화되고 매력을 갖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이웃도시들 조차 시원하고 맑은 바람을 로마에서 맞기라도 한 것처럼 평화에 대한 깊은 바램을 갖게 되고 땅을 경작하고 아이들을 평화속에 기르고 신을 숭상하게 되었다. 축제와 향연, 차별없이나 두려움 없이 서로를 방문하는 이들간의 후대와 친선교류가 이탈리아 구석구석 성행하였다. 영광과 정의가 누마의 지혜로 부터 모든 이의 가슴에 분수처럼 흘러넘쳤다. 그의 정신의 잔잔한 엄숙성은 세계로 퍼져갔다. 이리하여 시인들의 과장은 이 시대의 인간상태를 그리는데 부족하였다.
철테의 방패손잡이엔 거미줄이 있고곰팡이가 이제 날카로운 창과 양날 검을 잠식한다.
이제 더이상 시끄러운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꺼풀이 달콤한 잠을 빼앗는 일도 없다.
전쟁이나 분열 정치적 혁명에 대한 기록이 로마 왕대에는 없다. 그 인물됨에 대해 미움이나 질시가 역시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인간의 야심이 그의 왕좌에 대한 음모를 빚게 하는 일도 없었다. 반대로, 그를 틀별히 보살핀 신들에 대한 두려움이나 그의 덕에 대한 존경 혹은 놀아울 정도의 행독은 그의 나달들에 삶을 모든 악에서 떨어지게 하고 순수함을 유지케 하여 그를 플라톤이 여러 세대 후에 감히 정부에 관해 단언했던 다음의 말에 대한 분명한 본보기요 확증이되었다.
인간의 병은 어떤 신성한 복에 의해 왕의 권력이 철학자적 안목을 갖춘 한 사람에 의해 통일될 때 그치고 사라진다. 거기서 절제 속에 덕을 세우고 악을 지배하게 된는 것이다. 이런 현자야 말로 축복된 인물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는 자들도 축복된 사람들이다.
대중을 다루는데 있어 강제와 위협은 아마 조금도 필요 없다. 그러나 지배자의 생애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예를 그들 자신의 눈으로 볼 때는 기꺼이 현명한 이의 발자국을 따르고 한편으로 정의와 절제가 있는 친선과 일치가 있는 흠잡을 데 없는 축복된 삶을 따라간다. 이런 인생은 모든 정부의 가장 고귀한 목적이며 그는 그의 신민들에게 이와 같은 인생과 생각을 심어줄 왕이었다. 이는 누마에게 두드러진 것이었다.
-플루타르코스, <비교열전: 누마>, 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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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젖을 먹고 큰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된 로마 역사는 전쟁과 투쟁으로 점철된 것이었으나, 예외적으로 2대왕 누마는 로마인을 이런 거친 면을 다듬어 평화를 가져오고 평화롭고 온유한 행복으로 인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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