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의 재편과 반격

 

그리고 게르만족도 이 시기 점차 또 다른 혁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로마를 멸망시켜 문명세계를 암흑구덩이속으로 던져 놓은 것이 이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경우가 페르시아보다 더 치명적일 것이다. 로마 멸망의 최종적인 원인이 된 이들은 이 시기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종래에 분열되었던 그들은 더 강력하고 통합된 몇개의 민족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재편성 과정은 사료상으로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나 상대적으로 그리 분명하지는 않다고 한다. 

 

1세기에 라인 밖에는 수많은 군소 게르만 부족들이 할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가 쇠약한 시기에 이들은 단결하여 보다 큰 집단을 이루는데 제 10장에서 이들의 대표로 기번은 프랑크(Franks), 알레마니(Alemanni), 고트(Goths)를 들고 있다. 여기서는 여전히 불확실한 이들의 생성과정을 대략 기번의 말을 빌어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크족

 

먼저 로마가 멸망한 뒤 프랑스를 장악하여 그 선조가 된 프랑크 족에 대해서 특히 그 후손인 프랑스인들에 의해 여러가지 시조에 대한 추측들이 많았지만 가장 유력한 결론은 그 지역에 있던 부족들 즉 라인 저지와 베이저 강 주변의 부족들이 하나의 동맹을 결성한 것으로 프랑크는 그 동맹의 이름이라 한다. 로마군을 무찌른 적이 있던 카우키(Chauci)족, 게르만족의 영웅 아르미니우스의 체루스키족(Cherusci) 그리고 가공할 보병대를 가진 카티족(Catti) 등 라인 바로 건너에 살며 갈리아를 약탈하던 이 부족들이 하나로 통일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에서부터 이들은 로마에 대한 적개심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 동맹의 이름 프랑크는 곧 자유인(Freemen)이란 말로 아마도 그 자유란 로마에 대한 자유일 것이며 로마가 자신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으로 로마에 대한 자신들의 침략을 그에 대한 정당방위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알레마니족

 

알레마니는 프랑크보다 일찍 문헌에 등장한다. 카라칼라(Caracalla) 황제 재위시에 수에비(Suevi)계통의 사람들이 마인(Mein)강변에서 나타나 로마에게 식량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타키투스가 머리장식이 다른부족과 노예들을 구분짓는 독특한 방식을 가졌다는 게르만 최대의 부족이라고 말한 이 수에비족이 알레마니족의 선조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셈노네스족(Semnones)이 이들 중 가장 오랜 고귀한 혈통으로 존중받았다고 하는데 여기(엘베Elbe와 오데르Oder강 사이)에서 이동한 알레마니(Allemnai)와 훗날의 스크바벤(Schwaben)이 유래하였다고 한다.[각주:1] 알레마니의 뜻은 남자 답다 혹은 용맹함과 관련이 있다. 알렉산더 세베루스에 의해 놀라게 되어 주춤하지만 이후 꾸준한 성장을 계속해서 라인-다뉴브 국경에 정착해 로마를 위협하고 데키우스(Decius)황제를 전사시킨다.

 

고트족

 

고트 역시 로마 멸망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부족이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마치 로마를 약탈과 함께 파괴하고 멸망시키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 느낌마져 준다. 그들의 역사는 비교적 자세히 남아 있지만 기원설은 문헌상의 판단으로는 확실한 것이 아니다. 고트가 오도아케르를 물리치고 이탈리아를 다스리면서 라벤나의 궁정의 총리인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가 쓴 고트사가 후대 요르다네스(Jordanes)의 요약된 책으로 전한다. 거기서 그들의 기원을 스칸디나비아라고 하였다. 그들의 남하경로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흑해 주위까지 도달했다.[각주:2] 이렇게 해서 야지게스(Jagyges), 알란(Alani),록소라니(Roxolani) 등이 사는 사르마트 영역 보리스테네스(Borysthenes)와 타나이스(Tanais) 하구에 이른 첫 게르만 게통의 민족이 된다. 이 민족의 스칸디나비아 기원은 사실 많은 의심이 있었다. 또 요르다네스의 책에 오스트로고트(Ostrogoths)와 비시고트(Visigoths)가 각기 동쪽의 고트와 서쪽의 고트를 의미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흔히 이러한 탓으로 이들을  동고트와 서고트라고 번역하는데 요르다네스의 설명이외에는 그다지 신뢰성있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기번 자신은 이것들을 다 받아들였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요르다네스의 스칸디나비아 기원설은 고고학적으로 뒷받침될 수는 있지만 부분적으로만이다. 그리고 동서 고트의 의미에 관한 설도 기번은 그 당시에도 동서의 고틀란드가 있었다고 기독교 전파당시에 스웨데스(Swedes)와 고트족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지금도 그런 지명이 있다) 상당히 근거있고 정확한 기억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리고 가장 이른 시대의 문헌으로는 프톨레미의 " 고우타이(Goutai)"가 첫 등장이라고 한다. 또한 타키투스의 고토네스(Gotones)가 이주전의 그들이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이 많이 이루어진 지금에도 앞서 말한 이유때문에 더이상의 구체적인 이동경로나 전파양상을 알기는 힘들다고 한다.

 

다음 시대부터는 이들의 종횡무진한 활약을 보게 될 것이다.




 

<선사 시대 게르만족의 확산


 


게르만족의 이동

 

 

  1. Tacitus 1-Germania, Loeb Classic Library. [본문으로]
  2. 고고학적으로 흑해 등지의 체르니야코프 문화(Chernyakhov culture)가 고트족을 말하는 것은 거의 확살한 것 같다. 폴란드 비엘바르크 문화(Wielbark culture)가 준 영향은 제한되어 있어서 고트족의 이동이라고 반드시 단언하기 힘들다. [본문으로]
Posted by DreamersFl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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