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켈루스(Marcellus)는 그의 전군을 몰아 쉬라쿠사로 갔다. 그 근처에 병영을 차리고 도시로 사절을 보내어 레온티니(Leontini)에서 일어난 일을 알리라 했다. 그러나 이는 소용이 없어서 쉬라쿠사 사람들은 들으려도 하지 않았다. 권력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는 수륙 양면으로 도시를 공격하려 했다. 아피우스(Appius)가 육군을 이끌고 그 자신은 60척의 오단노전함으로 된 함대에 발사기 등 갖가지 무기들을 싣고 가서 8척의 갤리선으로 지지받는 판에 포를 세우고 성벽을 향해 가면서 이 무기와 자신의 명성을 신뢰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르키메데스(Archimedes)에 눈과 장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것이 그가 진지한 노력을 들여서 할 일로 생각한 것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은 흥미를 위해 한 기하학 작업의 부수물일 뿐이었다. 지난 날 히에로(Hiero) 왕이 그의 기술을 추상적 관념에서 실질적인 일로 바꾸기를 열렬히 바래 설득해 낸 것이며, 그의 취미를 다소 보통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쪽으로 돌려낸 것이었다.

지금 무척 선망과 존경을 받는 기계제작술에 관해서는 처음에 에우독소스(Eudoxus)와 아르퀴타스(Archytas)라는 기하학을 정교하게 다듬어 말과 도해로는 증명이 불가능 한 문제에 기계에 의한 감각에 익숙한 예시로 뒷받침을 하게 한 이들에게 처음 유래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기하적 그림에 대해 필수 요건인 두 기하평균선을 찾는 문제에서 두 수학자는 기계 장치 배열에 의지한 직선과 곡선으로 그들의 목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플라톤(Plato)은 이에 화를 내며 기학학의 순수한 우수성을 타락시킨다며 그들에게 심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는 무형의 기하학이란 추상적 사상에서 등돌리고 감각계로 떨어지는 일이어서 훨씬 천하고 육체적 노동을 요하는 목적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기계제작술은 기하학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오랫동안 철학자들에게 무시된 채 군사기술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히에로의 친척이면서 친한 관계인 아르키메데스 조차 마땅한 힘이라면 어떤 무게도 들어올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편지를 쓰고 있으며 그의 시현에서 같은 원리에 의해서 또다른 세계가 존재해 그곳에 갈 수 있다면 그는 이 세계도 움직일 수 있노라고 뽐냈다. 놀란 히에로는 그의 제안을 실행에 옮기라고 애걸하면서 작은 힘으로 거대한 무게가 옮겨지는 것을 보여달라고 졸랐다. 아르키메데스는 왕의 함대에서 세척의 배를 많은 인부들을 동원 해안으로 끌어다 놓고 승객과 짐을 싣고, 자신은 수고 없이 멀리 앉아 복합도르레를 작동해 자신에게 물위로 미끄러지듯 끌려오게 했다.

이에 놀라고 그의 기술의 힘을 이해한 왕은 설득을 통해 공성전에 쓰일 수 있는 각종의 공격 및 방어 무기를 준비하도록 했다. 이는 그에게 전혀 익숙치 않았는데, 지금 껏 그는 전쟁과 상관없이 평화로운 향연 속에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현재는 그의 기구가 쉬라쿠사에 세워져 그 제작자가 감독했다.

로마인들이 수륙으로 공격할 때 쉬라쿠사인들은 공포로 넋을 잃었었다. 그런 힘에 맞설 것은 없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르키메데스가 자기 기계를 사용해서 공격자들의 지상군에 무거운 돌 등을 쏘아보내니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그들 진영에 떨어져 대형을 헤집어 놓았다. 같은 시각에 거대한 기둥이 성벽에서 배로 내려졌는데 그 때문에 그 중 몇몇은 거대한 하중을 못이기고 가라앉았다. 다른 배들은 이물이 쇠갈고리에 잡히거나, 기중기의 부리에 낚여 공중으로 올려진 후 깊이 내동댇이 치거나 도시 내로 이리 저리 끌려와 돌려지고 성벽 절벽에 떨어뜨려져 그 안에 사람이 탄체로 부숴지고 인명이 살상되었다.

빈번하게, 배가 물에서 허공중으로 들어올려져 매달린 채 이리저리 돌곤 하는 것이 위험스런 장관이 연출되었다. 벽에 떨어지거나 잡는 부분이 미끄러질 때면 선원들이 사방으로 떨어졌다. 마르켈루스가 배로 만든 다리에 가져간 공성기는 그런 이름을 가진 하프 비슷한 악기와 닮아서 '삼부카(sambuca)'라고 했는데, 성벽에 처음 접근시킬 때 어느 정도 거리에서 10 탈렌트의 무게를 가진 돌이 한번 두번 세번 떨어지는 동안 공성기의 기초를 부수고 틀을 흔들고 판을 떼어냈다. 마르켈루스는 이에 당황하여 자기 배를 될수 있는 대로 빼고 지상군을 후퇴시키라고 명했다.

그 후, 전략회의에서 가능하면 밤에 공격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아르키메데스가 기계에 쓰는 밧줄이 그들 생각으로 머리 위로 멀리 보내긴 해도 근접시는 닿지 않아 소용없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르키메데스는 오래 전부터 그런 상황에 대비해서 짧은 사거리로 쏠 수 있게 했는데 벽의 많은 작은 구멍에 스콜피온(scorpion)이라 불리는 짧은사거리 발사기를 적 모르게 비치하고 있었다.

로마인들이 몰래 성벽으로 다가갔을 때 즉시 거대한 화살세례를 받았다. 무거운 돌들이 거의 수직으로 떨어졌고 벽 곳곳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그들은 후퇴했다. 이제 거리가 생기자 또 화살세례가 있어서 엄청난 사상이 있었고 배들은 서로 좌충우돌하는데도 적의 방향을 몰라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벽 뒤 가까이 공성기를 세워서 로마인은 신을 상대로 싸우는 것 같았다. 무수한 재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마르켈루스는 달아나 자기의 책사와 공병기술자와 농담을 나눴다.

'편안히 앉아서 우리 배를 컵처럼 사용하고 우리 삼부카를 쓸어버리는 기하학의 브리아레우스(Briareus)와 그가 우리에게 한번에 쏜 많은 화살들과 싸우는 것은 그만 합시다. 백개의 손을 가진 전설속 괴물을 능가하는 구려.’

실상 다른 쉬라쿠사인들은 단지 아르키메데스의 계획을 실현하는 몸으로 그의 영혼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다른 무기들은 놀고 있었고 그가 만든 것만 쓰였떤 것이다.

 

-플루타르코스, <비교열전: 마르켈루스>, 14-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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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수학자이자 과학자로 알려진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가 마르켈루스의 전기에 나온다. 그는 쉬라쿠사 출신으로 마르켈루스의 로마군이 이 곳을 함락할 때 어느 로마 병사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전한다. 플루타르크의 전언으로는 그가 만든 공성기로 인해 마르켈루스가 함락까지 크게 고전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헐리우드 스펙터클로나 구현될 만한 이야기가 많아 과장이 심한 것 같다. 주로 정치인이나 장군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과학기술자가 상당한 분량으로 설명되는 것이 바로 이 아르키메데스에 대한 설명이다. 동양에서 이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은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에 방어전에 주력해 직접 아르키메데스 처럼 방어무기를 만드는데 종사했던 묵가의 쇠퇴를 생각하게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죽음 후에 "로마의 창" 마르켈루스 자신도 결국 한니발 전쟁 중에 한니발에 의해 전사했다. 쉬라쿠사는 멸망하고 시칠리아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다.

 

 

  

<아르키메데스의 방어전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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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eamersFl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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