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집트(Egypt)가 아테네의 원조로 (페르시아에) 반란을 일으키고 헬라스의 삼단노함들이 키프로스(Cyprus)와 실리시아(Cilicia)까지 이르며 키몬(Cimon)이 노련한 해전술을 가지고 등장하자 페르시아 왕은  이에 맞서 헬라스인의 적대심의 성장을 막게 했다. 드디어 병력이 움직이고 장군들이 배치되며 테미스토클레스에게도 왕이 헬라스 문제에 그를 필요로 한다는 서신이 도착했다. 그 때 테미스토클레스는 이미 옛 동료시민들에 대한 분노를 거의 잊고 전쟁으로 얻는 대단한 영광과 권력에도 무디어진 채였는데 아마도 그가 나서도 소용이 없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테네에는 그 때 다른 훌륭한 장군들이 많고 키몬도 엄청난 기세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른 시기에 그가 얻었던 성취와 기념비들의 명성을 생각하여 그는 최상의 길이 자기 생을 마감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신께 제의를 바치고 친구들을 불러모았다. 그들과 악수하고 현재의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황소의 피를 마셨다고 하고 또 다른 말로 재빨리 독약을 들이켜 마그네시아(Magnesia)에서 죽었다고 한다. 나이 65세로 일생을 마감했고 그 대부분은 정치이 바쳤었다. 그의 죽음의 이유와 상황을 설명들은 왕은 전보다 더 그를 존경하여 그의 친구들을 더 우대하였다. 

 

 

-플루타르코스, <비교열전: 테미스토클레스>, 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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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던 테미스토클레스는 동포들의 등쌀에 쫓겨 드디어 페르시아 왕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그의 신하가 된다. 이오니아의 마그네시아에서 관리로 늙어가던 그에게 그리스에 맞서 싸우는데 그를 이용하려는 왕의 명령이 전해지자 풍운아 테미스토클레스는 친구들과 마지막 향연을 열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Posted by DreamersFl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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