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정치적 차이들이 완전히 축출되고 아테네시는 평온해져 통일된 것을 보자,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와 아테네인에게 관한한 모든 문제들-각국의 공헌금, 육군, 군함, 도서문제, 해양, 헬라스에서 모은 강력한 힘, 종속국들에 대한 패권, 왕가들과의 친교 및 동맹-를 자신의 손에 넣었다. 

이제는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민중의 말에 굴종적이거나 키잡이가 바람에 대해 그러는 것처럼 그들의 욕망을 받아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전까지의 민주주의와 민중을 부드럽게 설득하듯 다루는 것을 버리고, 귀족정이나 군주정을 채용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모두에게 최고의 이익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그는 민중을 대부분 설득과 지시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을 때 그는 고삐를 조이며 강제로 그들을 이끌었다. 현명한 의사가 오래고 복잡한 질병을 다루면서 자기의 환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맘대로 하게 하지만 때로는 쓰디쓴 처방을 병행하는 것과 같다.  

온갖 병리들이 이렇게 광대한 제국을 이룬 난봉꾼들 사이에 만연하는 동안에도, 그 혼자만이 선천적 재능을 부여받아 각 업무를 적당하게 처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민중의 희망과 두려움을 이용해 그들이 자만할 때는 이를 제어하고 절망할 때는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수사학 연설술이 플라톤식으로 '영혼의 마법'임과 그의 주요 업무가 사랑과 열정에 대한 주의깊은 연구임을 증명하였다. 이는 마치 영혼이란 현의 울림과 같아 현명하고 기교있는 연주술을 요하는 것이다. 그가 성공한 이유는 단순히 연설가로서의 능력만이 아니라 투퀴디데스(Thucydides)의 말대로 삶과 신뢰에서의 명망이 뇌물과 부정에 무심한 사람임을 확고히 증명하였다는데 있어서다. 그는 아테네시를 위대하게 만들어 모든 도시들 중 최고로 만들었다. 그는 왕들이나 참주들보다 힘에서 우월한 정도로 성장해서, 그들 중 몇몇은 자기 아들의 후견인으로 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드라크마도 아버지에게 받은 유산 이상으로 늘리지 않았다. 

 

-플루타르코스, <비교열전: 페리클레스>,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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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42년 페리클레스는 반대당과 지도자 투퀴디데스를 추방하고 구축했다. 이 이후 그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사실상의 일인통치를 굳혔고 민중에 대한 태도도 이제는 바뀌기 시켰다. 그가 이끄는 아테네제국의 번영과 성공적인 전쟁 수행이 민주주의의 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페리클레스의 역량은 민중을 추종하는데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분열되고 맹목적인 민중을 그의 현명한 심모원력의 정책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데 있었다. 

 

Posted by DreamersFl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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