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아테네 시에서 추방되어 아르고스(Argos)에 머무는 동안 파우사니아스(Pausanias)의 죽음의 틈이 아테네의 적대자들에게 구실을 주었다. 그에 대한 반역죄 고발을 한 이는 아그라울레(Agraule) 구 출신의 알크메온(Alcmeon)의 아들 레오보테스(Leobotes)였고 스파르타가 이를 지원했다. 파우사니아스는 반역적 계획에 연루되는 동안 테미스토클레스와 은밀히 연락했었다. 그러나 그가 나라에서 추방되고 극도의 고통을 겪는 것을 보자, (페르시아의) 왕에게서 받은 서신을 보이면서 비천하고 배은망덕한 사람들일 뿐인 헬라스인들에 마서 싸우는 일에 동지가 되어 주기를 대담히 요청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파우사니아스의 요청을 거절하였고 제휴는 철저히 고부했다. 그러나 이는 비밀로 하면서 그런 반역 기도를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파우사니우스가 스스로 이를 포기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그 비이성적 맹목적으로 추구되던 그 계획이 탄로나길 바랬던 것이다. 이제 파우사니아스가 죽음을 당하자, 그의 서신과 서류 중 그 문제에 관한 것이 테미스토클레스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스파르타인들은 그를 규탄했고 질투심많은 동료시민들도 그를 비난했다. 그는 출석해서 변명하지는 않았지만 서신을 통해 자신을 변호하면서 과거의 그릇되게 고발된 예를 들었다. 한 때 그가 동료시민들 앞에서 고발되어 중상을 받을 때 그는 자신은 다스릴 생각만 있고 다스림 받을 생각은 없는 이이기에 자기자신을 헬라스와 함께 야만인들에게 팔아넘기는 짓은 않는다고 했었다. 민중은 고발자의 말에 설득되어 사람을 보내 헬라스 회의의 법정에 그를 세우도록 체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이를 미리 전해 들은 테미스토클레스는 바다 건너 코르키라(Corcyra)로 갔는데 그곳은 그가 이전에 이득을 준 기여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코린트인들과 그들의 분쟁을 중재해 코린트인들에게 20 탤런트의 배상을 하게 하고 레우카스(Leucas)를 공동 식민지로 인정했었다. 그는 다시 에피로스(Epirus)로 달아났지만 여전히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에게 쫓견 채 절망적인 망명과 도망 생활을 하며 몰로시아인들의 왕 아드메투스(Admetus)에게로 갔다. 

 

-플루타르코스, <비교열전: 테미스토클레스>, 23-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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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군을 이끌던 그의 친구 파우사니아스의 몰락과 추방이 있은 후 화는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찾아왔다. 반역죄 수배 중 사망한 이후 그의 모의에 테미스토클레스와 관련된 서신들이 발견되자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합십해서 그들 법정에 세우려고 했다. 두 강대국 모두의 적이 되어버린 그가 이제 그리스에서 발붙일 곳이 없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Posted by DreamersFl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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