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 해 전에 했던 헛수고 중의 하나가 소위 공짜 텍스트로 영어로 고전을 읽겠다는 것인데 새삼 돈 몇 푼 아끼겠다고 정말 쓸데 없는 짓을 한 것이다. 스캔텍스트의 단점 중 하나인 잦은 엔터키 정도는 삭제해 놓았으니 그래도 필요한 사람들은 한 번 다운 받아보시기를.

 

Peloponnesian War.txt

(주의: 상저작권자가 상업적 목적으로의 무단배포는 금한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시간낭비라는 것이 이미 번역판들이 나와 있고 외국어로는 이미 굉장한 주석판들이 나온 상황에서 달랑 번역텍스트만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으며, 그와 동시에  점점 과거에 왜 그랬는가 하는 후회가 든다. 한 1-2권 정도 프린트하고는 통 못보고 있다고 최근에서야 번역판을 구입하여 대충 한 번 훑어라도 볼 수 있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을 더구나 읽기 어려운 말로 읽으려 고집하면 남보다 뒤쳐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영역(英譯)이 그리 읽기 쉬운게 더구나 아니다.

 

1.

 

의외로 이 책의 번역판은 종류가 많지 않은 모양인데, 썩 잘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대표적으로 가장 불만스러운 것 중의 하나가 야만인으로 통상 번역되는 "바바리안(barbarian)"을 박광순의 경우에 이어족(異語族)이나 천병희의 경우에 비헬라스인(非Hellas人)으로 번역하였다는 것인데 과연 이것이 얼마나 정당화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스 당대에 이 말이 "야만"이나 "경멸"의 의미가 없었다는 논리인 듯한데 여러 사정으로 보아 확실치 않은 것 같다. 위키백과의 다음 기술만 보더라도

 

http://en.wikipedia.org/wiki/Barbarian

 

그 말의 유래가 그리스 선형문자B까지 거슬를 정도로 유래가 깊기는 하고 그 당시에는 단순히 이어족으로 생각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나, 애당초 호메로스 등에서 외국인이 그리스말을 어눌하게 발음하는 것에 붙인 이름이라는데 거기서 경멸의 의미가 없었을 수 있는가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필자가 장담할 말은 아니지만 통상 외국 역자들도 그렇게 번역하는 것을 이렇게 바꾸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민주화 이후로 과거 서구일변도로 세상을 보는데 대한 성찰도 필요하지만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다문화도 좋지만 그렇다고 외국인들만을 위해 내국인도 누리지 못할 호화감옥을 지어주었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무리 좋고 바람직해도 중용에서 벗어나는 것은 도리어 역겨워 보일 때가 있다. 그냥 고대 그리스에서 바바로이란 말이 단순히 이어족을 의미하기도 했다고 한 번 정도 언급하는 정도가 더 적절해 보이는데 통째로 이렇게 바꾸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2.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면서 가장 생각났던 것은 중국의 춘추시대와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대국 진(晉)이 소국인 형(邢)을 쳐서 제(齊) 나라에서 원병을 보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을 때 포숙아(鮑叔牙)는 제의 군주인 환공(桓公)에게 "구원하는 것이 너무 이릅니다. 형이 망하지 않으면 진이 피폐하지 않고 제의 위세도 오르지 않습니다"고 늦장을 부릴 것을 주장하는데 이런 것이 강대국 아테네와 스파르타에게서는 일상다반사이다. 사태를 좀더 면밀하게 보면 사실 약소국이라고 해서 마냥 속은 것 만은 아닌 듯 싶다. 스파르타의 우유부단함과 늦장에 속터져하는 코린트의 사절 같은 경우 이런 경우가 하두 흔해서 펠로폰네소스인들 앞에서 당신들 약속 믿고 기다리다 망한 나라가 한둘이 이냐고 대놓고 질타하기도 한다.[각주:1] 그러나, 국제정치사나 전쟁사의 냉엄한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북한핵을 놓고 돌아가는 국면도 크게 보면 그러하지 않은가?

 

3.

 

초두에 자주 나오는 페리클레스의 명연설 중 내 개인에게 인상적인 것은 그의 호메로스에 대한 낮은 평가다. 한마디로 "호메로스나 그 밖에 그 미사여구가 당장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어도 실체적 진실에 의해 허구로 드러나게 될 다른 시인의 찬사가 필요없다"는 것으로 현실에서 대 아테네 제국을 건설한 "우리"에게는 호메로스의 문학세계는 어디까지나 허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호메로스가 노래하고자 한 것은 트로이 전쟁의 현실과 영웅들의 실행적이 아닌 바로 후 세기[각주:2] 페리클레스 치하의 민주주의와 번영이 함께하는 국가 건설을 고무 격려하려는 것일지 모르겠다.

 

4.

 

아무튼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고 아끼고 아껴두고 미루다가 이제야 읽었는데 역시 시간이나 돈이 아깝지 않을 명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으 듯, 지성인이라면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작이다. 물론 번역판들이 그 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도서관에서라도 빌려다가라도 꼭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1. 천병희 역, 제1권 69장. [본문으로]
  2. 호메로스의 시가 정리된 것은 참주 피시스라토스 때였다고도 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DreamersFl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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