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하면 조선 최대의 폭군 아니 그보다는 광인(狂人) 군주로, 각종 잔인함과 가렴주구 그리고 음행으로 악명이 높았으면서도, 누구보다 문학 시(詩)를 사랑했다고 한다. 다만, 주색을 아울러 함게 좋아했기에 대신들에게 빈번히 기생들을 두셋씩 옆에 끼고서 기생의 이름을 시제(詩題)로 내려 거스르면 벌을 내렸다. 관공서를 헐어 자기 놀이터를 만들고 각지에 채홍사를 파견하는 등의 난행도 많았고 폐비사건 등의 앙갚음으로 여러번의 참사를 벌인 것도 유명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처선(金處善)의 사건이다. 마지막으로 더이상 충간할 신하들이 없자 환관이었던 김처선이 나섰다가 분노한 연산에 의해 다리가 잘리고 죽음을 당했다. 다리가 잘린 그에게 연산이 일어나라고 명령했을 때, 처선은 "상은 다리가 잘리고도 일어나실 수 있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런 일을 하고도 연산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칠촌까지 죄주게 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대개는, 자기의 잘못도 잘못이려니와 환관따위가 감히 군주를 비방했다는 것이다.

 

 

殘薄臨民莫類予 (잔박임민막류여)

那思姦閹犯鸞輿 (나사간엄범난여)

羞牽痛極多情緖 (수견통극다정서)

欲滌滄浪恨有餘 (욕척창랑한유여)

 

백성에게 잔인하기로 나같은 이 없다지만

감히 천한 환관이 난여(천자)를 범하다니

부끄럽고 통분한 마음

창랑수(浪恨水)에 씻어도 한이 없으리.

 

 

반성이나 뉘우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과연 어렸을 때 부당히 어머니를 잃고 핍박된 상처가 이렇게도 후안무치한 연산의 광기를 낳았던 것일까?

 

 

 

 

Posted by DreamersFl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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